디지털 미니멀리즘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삶 - SNS 없이 사진은 어떻게 남길까?

antddyunddyun 2025. 6. 28. 11:36

사진을 찍지 않으면 기억이 사라질까?

나는 오랫동안 인스타그램에 일상을 기록하며 살아왔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뿐 아니라, 커피 한 잔, 노을진 하늘, 친구와의 만남, 고양이의 표정 하나까지도 사진으로 남기고, 글을 붙여 올리는 것이 나의 하루 루틴이었다.

그렇게 수년 동안 수천 장의 사진이 피드 위에 쌓였고, 나 역시 ‘내 삶의 기록은 곧 인스타그램’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방식에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기억’을 남기는 방식일까, 아니면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를 쌓는 일일까?
사진을 찍는 이유가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개하기 위해서’ 바뀌고 있다는 걸 자각한 순간, 나는 내 삶의 카메라 버튼이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구도, 인스타그램 필터에 어울리는 채도, 좋아요를 받을 수 있는 감정 포장… 사진은 ‘지금 여기’의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포장하는 브랜딩 수단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흐름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개념을 접했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활성화하며 사진을 기록하는 방식도 전면적으로 바꾸게 되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

 

사진의 주인공이 ‘나’가 아닌 ‘타인’이었던 시간들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전까지, 나는 나도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내 사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에선 “이걸 올리면 사람들이 반응할까?”, “이 장소는 피드에 올릴 만한가?”를 먼저 계산했다. 그래서 진짜 예뻤던 하늘보다는, 반응이 좋을 만한 풍경을 찍었고, 진짜 즐거운 순간보다는 ‘인스타 감성’이 느껴지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 일상을 조정했다.
이런 습관은 사진뿐 아니라, 삶 전체의 감각까지 왜곡시켰다. 눈 앞에 있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보다, ‘이걸 어떻게 보여줄까’를 먼저 생각하는 뇌 구조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사진은 ‘기억’이 아니라 ‘콘텐츠’가 되었고, 나의 일상은 타인의 시선에 맞춰 편집된 이미지로 남았다.

인스타그램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나는 그 왜곡을 직시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사진을 찍을 때, 다시 순간에 몰입하고 있는 나 자신을 의식하려고 노력했다.

그저 마음이 끌릴 때, 그 순간이 나에게 의미 있을 때만 카메라를 켜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그 사진이 누구에게 보여질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으니, 사진이 훨씬 자연스러워졌고, 그 안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진짜 감정’이 담기기 시작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나에게 사진을 되찾아준 셈이다.

 

기억을 저장하는 새로운 방식, 사진의 용도가 바뀌다

인스타그램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사진을 찍는다. 다만 그 목적과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빠르게 찍고, 빠르게 보정하고, 빠르게 업로드했지만, 지금은 천천히 바라보고, 찍고, 음미하며 저장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저장 공간도 SNS 피드가 아닌 로컬 폴더, 클라우드 앨범, 종이 다이어리 등 ‘나를 위한 아카이브’로 전환했다. 어떤 날은 그날 찍은 사진 중 단 한 장만 선택해서 작은 메모와 함께 일기장에 붙여두기도 한다.
나는 사진을 이제 '콘텐츠'가 아닌, '기억의 단편'으로 대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그 장면이 내 삶에 어떤 의미였는지 스스로 알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사진을 자주 꺼내보며 감정의 흐름을 복기하는 것도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좋아한 사진은 없지만, 내가 좋아했던 순간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런 방식이야말로 내 삶의 기록에 더 진실하게 다가간다는 걸 느끼고 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이 강조하는 본질 중 하나는 삶의 도구를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SNS에서의 사진은 ‘반응을 위한 도구’였지만, 지금의 사진은 ‘자기 회복의 수단’이다. 찍은 사진이 얼마만큼 멋있는지보다,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가 중요해졌다. 이 변화는 단순한 사용 방식의 전환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진 결과였다.

 

보여주지 않아도 남는다. 더 선명하게, 더 깊게

인스타그램 없이 살아가는 지금, 나는 사진을 ‘찍지 않아도 기억이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가끔은 휴대폰조차 꺼둔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 여행지에서 굳이 사진을 남기지 않아도, 그 풍경의 공기와 향기, 감정의 떨림은 고스란히 나의 몸과 마음에 남는다. 과거에는 어떤 순간이든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억은 찍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임을 안다.
사진은 필요할 때만 찍는다.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을 내가 오래 붙잡고 싶은 경우에만 찍는다.

SNS가 없으니, 비교도 없다. 다른 사람의 여행, 식사, 일상과 비교하지 않으니, 나의 순간은 그것만으로 온전하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담은 사진은 오히려 더 선명하고, 더 깊게 기억에 남는다. 사진은 이제 내 삶을 증명하는 수단이 아닌, 내가 나와 연결되는 도구로 변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사진 찍는 방식을 바꾸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삶을 기억할 것인가’를 다시 묻는 작업이다. 사진은 결국 삶의 단편이다. 그리고 그 단편이 진실하려면, 그 순간에 내가 정말로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인스타그램 없는 삶은 처음엔 불안했지만, 지금은 훨씬 더 자유롭고 진실한 기록을 남길 수 있게 해준다.

이제는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내 기억은 더 깊고 선명하게 남는다. 그리고 나는 그 방식이 더 좋다.